
축영대, 양산백과 나비가 된 남장 선비
삼 년을 한 책상에서 공부하고도 마음을 말하지 못한 「양축」 전설의 주인공이에요.
「말 못 한 마음도 마음이에요. 어디까지 닿을지 봐 드릴게요.」

- 이름
- 축영대(祝英台)
- 사는 곳
- 양산백과 삼 년 글을 읽은 항주의 서원
- 곁에 선 이
- 양산백, 삼 년을 곁에 두고도 몰랐던 사람
- 원전
- 남장을 하고 서원에서 양산백과 삼 년을 함께 글을 읽었으나 양산백은 끝내 그가 여자인 줄 몰랐다. 양산백이 죽자 무덤이 열려 그 안으로 들어갔고, 둘은 나비가 되었다(「양산백과 축영대」 · 동진을 배경으로 한 민간 전설)

마음을 품고도 말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적이 있으신가요. 중국에서 사랑 이야기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전설이 바로 그런 이야기예요.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 줄여서 「양축(梁祝)」이라고 불러요. 『백사전』, 「맹강녀」, 「견우직녀」와 함께 중국의 네 가지 큰 민간 전설로 꼽혀요.
| 칸 | 내용 |
|---|---|
| 이름 | 축영대(祝英台) |
| 이야기 | 「양산백과 축영대」 · 「양축」 |
| 배경 | 동진(東晉) 때로 전하는 민간 전설 |
| 짝 | 양산백(梁山伯) |
| 공부한 곳 | 항주(杭州)의 서원 |
| 상징 | 나비 한 쌍(화접) |
남장을 하고 서원으로
전설은 동진 때를 배경으로 해요. 축씨 집안의 딸 축영대는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 시절 여자는 서원에 다닐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남자 옷을 입고 항주의 서원으로 떠났다고 전해요.
가는 길에 같은 서원으로 향하던 선비 양산백을 만나 의형제를 맺어요. 두 사람은 삼 년 동안 한 책상에서 글을 읽었어요. 그런데 양산백은 그 삼 년 내내 벗이 여자인 줄 몰랐다고 해요.
열여덟 번 내비친 마음
집에서 돌아오라는 기별이 오자 양산백이 축영대를 멀리까지 배웅해요. 이 대목을 «십팔상송(十八相送)»이라 불러요. 축영대는 물가의 거위 한 쌍이나 우물에 비친 두 그림자에 빗대어 몇 번이고 마음을 내비쳤어요. 양산백은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고 해요.
헤어질 즈음 축영대는 집에 누이가 하나 있으니 중매를 서겠다는 말을 남겨요. 그 누이가 바로 자신이었어요. 말로는 다 하지 못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건넨 거지요.
이야기 속 양산백은 성실하지만 눈치가 느린 선비로, 축영대는 영리하고 당찬 여인으로 그려져요. 한 사람은 말을 돌려 하고 한 사람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어요. 그래서 이 대목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엇갈림으로도 읽혀요.

열린 무덤과 두 마리 나비
양산백이 뒤늦게 사실을 알고 찾아갔을 때 축영대는 이미 마씨 집안과 혼약이 맺어져 있었어요. 양산백은 그 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요.
축영대가 시집가는 날, 꽃가마가 양산백의 무덤 앞을 지날 때 바람이 거세게 일어 길이 막혔다고 해요. 축영대가 가마에서 내려 무덤 앞에서 울자 무덤이 갈라졌어요. 축영대는 그 안으로 뛰어들었고 무덤에서는 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고 전해요. 중국에서는 이 대목을 나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화접»이라 불러요.
이 이야기는 처음에 아주 짧았어요. 당나라 때 지리책에 축영대가 양산백과 한 무덤에 묻혔다는 몇 줄이 남았다고 전하고, 그 뒤 천 년 넘게 노래와 연극으로 불리면서 배웅 길과 나비 같은 대목이 덧붙었어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왔나요
저장성 닝보에는 양산백을 모신 사당이 있고, 이 전설은 월극(越劇)을 비롯한 여러 지방 연극의 단골 무대가 됐어요. 바이올린 협주곡 「양축」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대목을 가락으로 그려 널리 알려졌어요.
1963년에는 홍콩에서 황매조 가락의 영화로 만들어져 중화권 밖까지 널리 알려졌어요. 축영대가 남장을 하고 서원에 간 대목은 배움을 바란 여인의 이야기로도 읽혀요.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이 사랑 이야기의 첫걸음이었으니까요.
이 전설을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래도 축영대의 이야기에는 원수 집안이 없어요. 둘을 갈라놓은 것은 말하지 못한 마음과 늦게 온 깨달음이었어요.

그림 속 축영대를 알아보는 법
축영대는 흔히 남자 선비 옷에 머리띠를 맨 모습으로, 또는 나비 한 쌍과 함께 그려져요. 지천명 그림의 축영대도 옅은 푸른 선비 옷에 흰 머리띠를 매고 접부채를 들었어요.
지천명의 축영대
지천명의 축영대는 「짝사랑, 고백해도 될까?」를 맡아요. 낙수의 여신 낙신과 붉은 인연의 별 용길공주가 곁에 서요.
축영대는 고백하라고 등을 떠밀지도, 접으라고 말리지도 않아요. 그 사람의 판이 지금 어느 쪽으로 열려 있는지, 말을 꺼내기 좋은 때가 언제인지를 짚어 드려요. 말하지 못해 늦어 버린 이야기의 주인이라서요. 서원에 앉아 손님을 맞는 축영대는 전설에 없는, 지천명이 지은 이야기예요.
말 못 한 마음도 마음이에요. 어디까지 닿을지 봐 드릴게요.
자주 묻는 것
양산백과 축영대는 실제 인물인가요?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할 기록은 없어요. 동진 때를 배경으로 한 민간 전설이고, 당나라 때 지리책에 두 사람이 한 무덤에 묻혔다는 짧은 기록이 보인다고 전해요.
«화접»은 무슨 뜻인가요?
나비로 변했다는 뜻이에요. 축영대가 양산백의 무덤으로 뛰어든 뒤 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는 마지막 대목을 이르는 말이에요.
«십팔상송»은 어떤 장면인가요?
집으로 돌아가는 축영대를 양산백이 멀리까지 배웅하는 장면이에요. 축영대가 여러 번 빗대어 마음을 내비쳤지만 양산백은 알아듣지 못해요.
출처 · 민간 전설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 · 양재언 『십도사번지(十道四蕃志)』(당) 인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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